1. 지하철역 종로3가, 공원의 과거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거리는 북적입니다. 부채 노점, 싼값의 음식점, 서울의 중심에 이러한 환경은 낯선 환경이다.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은 노인들로 붐빕니다. 흔히 시골에서 큰 나무 밑이나 앉을 수 있는 곳에는 노인들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시 한복판의 지하철 종로 3가역에 내리는 사람들은 취업 준비생, 영어 수강생, 회사원들, 다양한 사람들이 타고 내리지만 가장 많은 비율의 연령층인 노인들이 이곳을 삶의 터전처럼 자주 드나들고 있습니다. 곧, 서울의 노인은 종로 3가역에서 모입니다.
처음 노인들이 이곳에 모이게 된 이유는 위치가 지금처럼 중심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치가 가지는 접근성으로 1899년 대중교통의 혁신이 있었고, 최초의 전자 영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때 노선으로는 서대문에서 종로, 종로에서 청량리로 이동할 수 있던 것이 가장 큰 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때는 노인들만 모였던 것은 아니다. 현재의 노인들이, 그리고 더 이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현재의 모습과 다른 모습으로 다양한 형태의 활동을 하며 이곳을 드나들었습니다.
두 번째, 1920년의 인구 구성을 살펴보면 한국인 72%이며, 일본인 26.2%로 대부분의 한국인이 탑골공원에서 가까운 북부 도성내와 청계천 일대에 거주했습니다. 따라서 공원에서 거주지가 가깝기 때문에 쉽게 공원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근린에 거리에 있다는 심리적 상호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원 담장 바깥으로 사창가가 조성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뒤의 배경으로는 구한말 관기제도의 폐지와 함께 우리의 기생문화가 일본의 공창제와 교묘히 결합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지하철역 종로3가, 1930년~1945년
20년 후기가 들어서면서 공원은 침체되기 시작했습니다. 조성 후 30년 정도가 지나면서 시설이 노후되었습니다. 또한 공원 관리청인 총독부가 공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에 의해 조성된 공원, 일본인 거류지역에 조성된 다른 공원들과 달리 조선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교통요지에 조성된 것입니다. 특히 1919년 만세운동의 중심적 장소로 한국인들에게 상징적 장소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곧, 탑골 공원이 ‘껄끄러운 장소’이 되었고 총독부가 공원의 페쇄까지 검토했고, 시설 투자는 보류되었습니다. 이후 1933년 총독부에서 경성부로 공원 권리권이 이전하였고, 공원 정비를 하면서 라디오 설치,
야외 음악회 활기를 찾았았으나 지속적인 관리는 되지 못하였습니다.
결국 경성부도 조선총독부 산하였기 때문에 큰 변화는 하지 못하다가 2차 대전 후반기에 모든 총력을 태평양전쟁에 몰입시키는 전시를 통해 더욱 공원에 대해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3. 지하철역 종로3가, 1945년~1989년
일제 강점기부터 방치된 공원은 50년대 말까지 별다른 변화 없이 쇠락의 길로 이어졌습니다. 혼란한 시대 (한국 전쟁 이후)
공원 문화를 기대하기 힘들었습니다. 또한 1953년 전쟁 직후 공원 북쪽의 공지에 판자촌이 들어서기도 하였습니다.
80년대 후반까지 군사정권은 시민들의 저항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집회장소로 탑골공원이 자주 이용되었습니다. 항일 규탄대회를 포함한 저항운동의 메카가 되었습니다. (과거 3.1운동의 발상지) 1967년 도시재개발 사업으로 주변의 불량 주택들 철거하고, 사창가 이전, 주변 정비하였습니다. 공원의 서측과 북측이 파고다아케이드에 둘러싸이게 됨으로써 공원면적이 줄어 들게 되는 등 공원 자체의 질이 저하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공원 유료화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도시공원의 기본적 성질이 변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는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졌으며 상가 건설 15년 만인 1983년 파고다아케이드 철거하였다. 상가 철거 재정비한 탑골공원은 민족기념공원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였고, 공원 이용자가 40%로 노인들로 채워지는 공원정책이 사회적 변화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양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때부터 공원의 이용자가 노인들로 구성되기 시작하였는데 이어져 현대에까지도 이러한 영향으로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종로3가는 당연스러운 자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의 변화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공원에만 해당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종묘공원과 탑골공원이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기는 하지만 그 주변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나 식당에는 젊은 층의 학생들만 사용하는게 아니라 노인들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카페에서 손톱을 깍거나, 주위를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행동과 오랜 시간 자리에 머물면서 주문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해서 영업하는 주인이나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편입니다. 그런 현상으로 인해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주변에는 있는 카페를 기피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도 대학생 시절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종로 3가를 많이 이용하였는데 그때마다 지하철이나 카페에서 노인들과 함께 있으면서 불편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세대 간의 갈등이 표면적으로 어떤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이 ‘탑골공원의
노인들’을 기피하고 불쾌해하는 이시대의 젊은 사람들의 인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소외받는 계층이 되었고, 이들이 찾아가는 곳이 탑골공원과 종묘공원으로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61년 5월 5일부터 5월 20일까지 ‘탑동공원 24시’ 였으며, 공원의 존재가 무대로 삼아 살아가는
노숙자, 실업자, 악극단, 이야기꾼 등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 양상으로는 다분화 된 공원 문화가 새롭게 형성된 시기이며, 1960년대 초반에는 공원의 시설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하나의 장소가 집회와 시위 문화의 메카로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노인을 비롯한 서민 문화가 공원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정치적 상황,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상호 작용했습니다.
4. 지하철역 종로3가, 1990년대~1995년
주변의 상황과 소통하면서 그 성격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로 해석하였으며, 집회와 시위가 진보적 성향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전 1989년의 집회에서는 진보적, 보수적 성향이 비슷한 비율을 차지했었습니다.
1990년대 정치적 상황이 변하고 시민들의 참여의식이 크게 고양된 사회변화 양상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집회 주제는 항일, 반정부에 한정되지 않았고, 다양한 주제로 인권문제, 자발적인 시민운동, 노동운동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조선시대부터 민의를 수렴하는 장소였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되었으며, 노인들의 이용행태가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서민들이나 불우이웃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대한 기사가 새롭게 등장했습니다. 이에 서민들의 애환, 봉사활동이 활성화 되었고, 경제적 여건이 월등히 좋아짐, 공원의 행태에 직접적인 영향일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를 주변의 상황과 소통하면서 그 성격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로 해석되고 있으며 1991년 시설 개보수는 화장실 확장, 휴직시설 정비했습니다. 이는 노인 이용자들의 유입을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지하철 노선이 지속적으로 연결되면서 1,3,5호선이 지역을 통과, 노인들에 대한 무임승차 정책이 시행 1990년 서서히 탑골공원은 ‘노인공원’으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인들이 공원으로 모이게 되는 원인으로 사회적 현상이라고 설명하였으며, 노인들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변화되었는데 이는 노인 노동력 활용 기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또한 농촌에서 도시로의 인구유입이 늘어나면서 수도권 지역의 인구 증가하고 이는 노인 인구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노인들이 공원으로 모여들면서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노인 대상의 저렴한 식당, 불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주변 거리에는 노인들 취향의 물품을 취급하는 노점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5. 지하철역 종로3가, 1996년~ 2000년 성역화 사업 이전
1990년대 들어서 형성되기 시작한 시민문화와 노인문화는 절정을 이루었고, 하루 이용하는 노인 3000명, IMF로 삶의 터전을 잃은 실직자들이 가세하면서 노인들을 상대로 한 매춘, 노숙자들로 인한 공원 분위기 훼손, 위생상의 문제 등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려한 노인 문화로 성장했는데 이는 기술적 메스미디어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자유롭게 표현하는 장소로 활용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담, 강의, 고사성어, 붓글씨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스타 중심으로 그들만의 문화를 즐겼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탑골공원의 생동감이 넘쳤고, 이때의 가치는 1920년대 공원 개방 초기 활성화 시기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합니다.
6. 지하철역 종로3가, 현재(2020년 기준)
이후 2002년 월드컵을 앞두면서 새로 성역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00년 서울시에서 탑골공원 성역화 계획이 이루어졌고 도시공원으로서의 기능을 대폭 축소하면서 3.1 정신을 기리는 기념적 장소로 재정비하는 정책 추진하였습니다. 서울시는 19억의 예산을 가지고 시작하였다.
이러한 배경은 노인들이라는 특정계층의 집중적 이용에 따른 부정적 여론과 2002년 월드컵 경기 시 탑골공원을 찾게 될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가 고려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계를 진행하고 문화재 시굴조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성역화 사업은 불교계의 강력한 반대 여론으로 여러 번의 조율을 통해 공원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불교계 시각에서는 탑골공원이 3.1운동 성지이기 이전에 고려, 조선조를 거치면서 원각사가 자리 잡았던 터, 원각사지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시굴조사가 아니라 전면적인 발굴 작업을 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탑골공원이 많은 사건과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습니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33인 민족대표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제를 중심을 구성하였고 3.1정신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설치하였다. 각종 종교계가 연결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천도교는 손병희 선생 동상, 불교계: 만해용운당대선사비를 세우게 되었다. 이는 땅에 대한 영향력 행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력은 시간의 한계를 뛰어 넘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작용하며, 공원 관리청인 서울시로 하여금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성역과 사업을 포기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2002년 7월 서울시에서 성역화 작업으로 인한 각종 민원 발생을 이유로 공원 유료화를 포함한 성역화 사업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하였습니다.
새로운 질서로의 재편이 되었고, 2002년 3월 1일 재개장하였습니다. 노인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공원의 이용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는 새로운 공원관리지침과 노인복지센터의 개원이 원인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파고라, 벤치 등 공원 휴식시설의 철거는 장소가 이제는 성역화되었고 노인들의 활동무대로 이용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재는 입구부와 화장실 근처, 새로 조성된 휴식공간에 한하여 소규모 그룹만이 소극적인 공원 이용행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에는 탑골 공원은 빈민층 노인과 독거노인으로 소일거리를 찾거나 노인들과 이야기를 하러 이곳을 찾습니다. 2000원에 해결할 수 있는 식당과 이발소, 무료 급식이 노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습니다.
7.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으로 이동
변화된 탑골 공원에 대해서 긍정적 시각, 부정적 시각 존재한다. 위의 변화된 탑골공원의 모습입니다.
먼저, 긍정적인 시각은 노인들을 시설이 우수한 노인복지센터로 유도하였으며 개선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노인들 틈에 끼어 공원의 슬럼화를 재촉했던 이른바 노숙자들을 공원에서 사라지게 했다는 공원 관리적 차원의 평가가 있습니다.
부정적인 시각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자발적인 대인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짐으로써 사회와의 소통을 끊은 채 박제된 공간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루에 3000여명 넘게 이 공원을 이용했던 노인들은 이제 대부분 노인복지센터로 혹인 인근의 종묘공원으로 옮겨갔습니다.
공원의 부극과 동측 담장 너머로 노인들이 찾아들었으며 정비된 공원에는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광경을 간간히 목격할 수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공원의 물리적 공간의 변화를 나타낸 것입니다.
탑골공원에서 종묘공원으로 이동한 노인들은 여전히 비슷한 양상으로 종로 3가역 부근을 배회하며 자신들만의 쉼고 여가활동을 즐긴다. 종묘공원에서 바둑을 두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 무료 급식을 여전히 나눠주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탑골공원은 1시간 조차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며, 종교공원의 노인들 역시 주춤한 기색이다. 전염병으로 인해 삶의
형태가 변화되기도 하였지만 노인들에게도 밖으로 나올 수 없는 큰 공간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8. 영화 ‘박카스 할머니’를 소재로 한 ‘죽여주는 여자’ 2016년
2016년 개봉되었던 영화 ‘죽여주는 여자’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아마 영화의 제목보다
‘박카스 할머니’라는 소재가 더 충격적이고, 그 내용은 과히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탑골 공원에 대해 알아보면서 역사와 현재, 오해했던 부분들을
생각하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고 다시 한번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신문 사회면 기사를 통해 ‘박카스 할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영화가 시사하는 바는 소외 계층, 노인들의 삶의 일부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과거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었다면 지금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시점이 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
노년의 가난함, 노인의 성문제 등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을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는
인물이 ‘박카스 할머니’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시대의 소외계층의 단면을 보여준다. 소외되었다는 계층이 모두 나오며,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가장 소외된 공간인 탑골 공원 주변, 탑골공원을 이용하는 노인들, 트렌스젠더, 장애인,
이민자 여성 등을 다루는 영화이다.
종로에서 노인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다세대주택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소영의 이웃은 트렌스젠더 ‘티나’와 장애인 ‘도훈(윤계상)’이다.
어느 날, 매춘으로 임질에 걸려 병원에 간 소영은 병원 원장이 필리핀 아내와 다투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소영은 그들의 코피노 아이 민호를 방치할 수 없어 무작정 집으로 데려온다.
소영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게 두 사람은 식구가 된다. 소영은 다시 매춘 일으느
다시 시작한다. 하지만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소영’에게 예상치 못한 부탁을 해온다. 박카스
할머니 ‘소영’의 이야기는 가슴 아픈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소영’은 노인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는 일명 ‘박카스 할머니(아줌마)’이다. 그녀가 사는
다세대주택의 집주인이자 이웃인 ‘티나’는 성소수자이고 옆집 총각‘도훈’은 의족을 차는
장애인이다. 소영이 데려온 아이 ‘민호’는 아빠에게 버려진 코피노이다. 그들은 다세대주택에 모여
산다. 그리고 관계하고 소통한다. 서로의 사정을 잘 아는 이웃으로 어려울 때 부탁하고 힘들 때
위로하며 지낸다. 영화의 메인 플롯은 주인공 ‘소영’의 서사이지만 소외 계층의 단면을
서브플롯을 통해 어색하지 않게 제시한다. ‘소영’의 본명은 양미숙으로 가명을 쓴다. 소영이 젊은
시절 같은 술집에서 일했던 지인을 마주치고 당황하거나 혼혈미군을 보고 슬픔에 잠기는 장면만
봐도 그녀의 기구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소영의 주 활동 장소는 종로의 탑골 공원과 그 주변이다.
그녀가 만나는 노인들도 탑골공원에서 비슷한 처지에, 소영을 기다리거나 만나서 성매매를 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지도 못하는 코피노 아이 민호를 데려다가 양육한다. 과거 자신의
고객이었던 노인들을 만나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영화는 내내 모두의 사정이 있고
서글프다. 이 영화를 통해 노인문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회적 문제로 기사화
됐던 박카스 할머니에 대해, 치매와 병듦, 독거 노인의 외로운 삶에 지친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노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소영의 성매매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소영은 죽고 싶어 하는
노인들을 죽음을 도와주며 노인들의 죽음을 책임까지 소영이 져야하는 것을 보면서 뭔가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소영은 결국 경찰에게 꽃뱀으로 죽음을 노린 것으로 기사에 나면서 연행되지만
소영은 이것 또한 겸허히 받아들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소영은 죽여달라는 노인들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큰 죄책감을 느꼈고 힘들어했다. 오히려
감옥에 가서 본인에게 부탁하지 않기 때문에 마음이 편했으리라 생각한다. 소영은 처녀시절
흑인군인 사이에서 양공주로 일하면서 아이를 임신했지만 책임지지 못해 입양을 보냈다. 이를
소영은 영화 전반에 걸쳐 후회하기도 하고 마음에 큰 죄책감으로 살아간다.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컸는데 주변의 이웃을 돕고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면서
편견에 쌓여 있던 내 생각 속에 영화에서 나오는 성매매 여성의 모습을 한 소영의 모습은 그저
한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져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 안에서 단순히 노인 문제라고 여겨지는 성매매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진짜 노인의
문제인 죽음과 현대 시대를 살아가면서 겪는 어려움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이렇게 급변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적응 할 수도 없는 곳이자 노인들이 가야 할 곳이 서울 시내 춥고 더운
탑골 공원이라는 것이 노인의 시대를 이해할 수 없고 편견으로 가득찼던 시각을 벗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9. 글을 맺으면서
공원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공원에 현재 존재하고 있는 노인들이 지나온 시대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나를 대비해 본다면 과연 그런 시대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노인들의 시대를
텍스트로만 보고 단순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노인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정책과 제도,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린 이 시대가 그들에게
너무 야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더욱더 노인들의 삶, 소외 계층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전쟁으로 친구, 가족, 이웃, 동포를 잃었고 어른이 되어서 삶은 매우 고달팠다. 현실 속에서 설
자리를 하나 둘 잃어가고 마침내 사회로부터 버려져 고되고 힘든 일, 아무도 돌봐주지 않고
외면하는 노인들의 삶 속에서 삶을 마치고 싶은 노인들의 마음들이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얼마나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고 배려해주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통해 노인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를 다루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들어 탑골공원의 노인지대화는 가속화됐다.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명예퇴직자들까지
가세했다. 근처 종묘공원이 더 판이 큰 노인 왕국이었지만 종묘가 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걸 계기로 풍선효과처럼 노인들이 탑골공원으로 더욱 몰려들며 지금의
‘노인 공원’ 이미지가 완전 구축됐다.
앞서 조사한 내용과 같이 서울시는 2000년 탑골공원을 독립운동 성역으로 세우고자 1년간
정비했다. 그러나 이곳은 노인들을 위해 무료 급식을 좆아, 파격적이리만치 저렴한 인근 식당과
이발소를 찾아, 외로움을 삭혀줄 말동무를 찾아 탑골공원으로 출근하는 남자 어르신들의 세상이
됐다. 그들보다 경제력으로 더 무력한 ‘박카스 할머니’가 슬그머니 나타나 “나랑 연애하고
갈래요? 잘해 드릴께”라고 박카스를 내미는 서울 안의 독특한 섬이 됐다. 영화에서 이런 부분이
재현되고 너무 보기 힘들정도로 적나라해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함이 많았다. “진짜 이런다고?”
라고 하면서 너무 충격적인 장면들을 보며 두려웠다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이..
탑골공원, 종로 3가, 종묘공원은 ‘박카스 아줌마 400명 활동, 주름진 성, 은밀한 거래’ ‘정신지체
박카스 아줌마, 남편은 알고도….’ ‘홍보관·약장수·사기꾼 그래도 자식보다 살가워 알고도 속는
거지’ ‘여성 가난과 노인 성욕의 일그러진 결합’ ‘파고다 출근자들이 꼽은 낙원동 맛집’…. 이처럼
언론이 주목하는 우리 사회 노인 문제 현주소가 됐다.
사실 탑골공원에 모여드는 노인들, 종로3가의 노인들 등의 그 공간에 대해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빈곤 노인, 독거노인, 질병과 장애 노인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며 이들이 현재
직면한 현실에 어떻게 반응하고 간신히 살고, 죽어가고 있는지 많은 숙제와 노인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참고문헌
김영민 외. (2010). 공원을 읽다: 도시공원을 바라보는 열두 가지 시선들. 나무도시
박승진. (2003). “탑골공원의 문화적 해석”.한국조경학회지. 30(6)
이강원. (2004). 담을 두른 공원: 탑골공원을 통해 본 도시 공공공간의 의미. 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사이트. 한국관광공사. http://www.knto.or.kr.
영화. 죽여주는 여자. (2016). 이재용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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